산이 좋아라!

가을의 시작, 백봉산에서 심장마비로 죽을뻔~~

여디디아 2012. 10. 16. 13:13

 

 

 

 

 

 

 

 

 

 

 

 

 

 

 

 

 

 

 

 

 

 

 

 

올봄에 동생과 둘이서 야심찬 약속을 했었다.

평소에 운동이 부족한 동생을 위하여 금요일마다 둘이서 산행을 하기로 말이다.

그리고 봄과 여름에는 정말로 열심히 산행을 했었다.

건설경기가 어려우니 소파가 팔리지 않고 결국은 일하는 직원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침으로 동생이 금요일에 쉬는 날이 많아졌다.

나도 쉴 수 있다면 길게 산행을 할 수 있을텐데 출근해야 하는 나 때문에 천마산 기슭에 붙어있는 된봉(이리가도 고되고, 저리가도 고되고, 어디로 가도 고되다는 이름으로 붙여진 이름이라 함)까지 가기도 하고 얕은 능선이지만 2시간 코스의 산행시간은 우리를 행복하게도 만들고 까닭모를 건강함이 더덕더덕 붙어지는 것도 같았다.

 

긴 여름은 잦은 비를 데려왔고, 비 그친 산에는 뱀이 나오는 것을 지난해에 무섭도록 봤던터라 아예 발길을 끊었다.    

그리고 토요일 둘이서 가끔 백봉산엘 오를 뿐이다.

추석 다음날 둘이서 백봉산엘 올랐고 반질거리는 이쁜 알밤을 줍다가 벌에 쏘여서 기겁을 하기도 했지만 

모처럼 토요일 둘만의 산행을 포기할 수 없어서 간단한 차림으로, 도시락도 준비하지 않은채로 백봉산엘 올랐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운동의 양이지 정상정복이 아니라는 말을 몇번씩이나 뱉어내는 것은, 힘든 정상보다는 편안한 임도길을 걷는 것이 어쩐지 부족한 등반실력인 것 같아서이다.

백봉산은 금곡이나 평내, 마석에서 오를 수 있고  능선을 넘어서면 임도가 여러갈래로 길게 이어져 있다.

처음 백봉산에 오를 때는 도대체 어디가 어딘지 몰랐는데  몇년을 오르다보니 이제 조금씩 길이 보이기 시작한다.

물론 평내교회 늘사랑팀이 지나온 길을  야무지게 기억하고 온 탓이지만 말이다.

오늘은 중간코스로 3시간 정도의 산행을 하자고 했는데 처음 길을 잘못 든 탓에 5시간코스가 되고 말았다.

 

곱게 물들어가는 단풍잎이 이쁘고, 억새인지 갈대인지 서로에게 묻다가 대충 지나는 길엔 누군가 길게 웃자란 들풀을 묶어놓기도 했다.  보기드문 고운 산국화들이 보랏빛으로 노란색으로 더러 하얀색으로 피어있는 모습이 어찌나 이쁜지.

반들거리는 도토리는 누군가 잘못하여 자루에서 쏟아부은 듯하다. 동생은 처음부터 끝까지 '도토리  좀 봐, 너무 예쁘고 아깝다'를 연발하며 가끔 줍기도 하지만 이미 여러본 보았던 나는 그냥 지나친다.

 

따사로운 가을햇살아래  단풍이 깃드는 오솔길을 걷다가 서늘한 그늘과 편안한 자리가 나오면 커피를 마시고, 곶감을 먹고

다시 1시간을 가다가 쑥떡과 양파즙을 마시고, 피톤치드가 가장 많이 배출된다는 잣나무 밭에서 이상하게 생긴 나무들을 보며 배를 깎아서 먹고 알맹이로만 만들어진 순한 커피를 마시고나니 동생의 배낭이 가벼워졌다.  

 

임도가 거의 끝나고 묘적사와 평내의 가림길에서 나는 심장마비로 숨이 멎는줄 알았다.

"야, 곰이다!"라며 사색이 되어 동생에게 말했다.

"언니, 곰이 아니고 개야 개. 길 잃은 개야"라고 하는데 내 눈에는 곰으로 보인다.

달아나고 싶은데 달아날 수도 없고, 피하고 싶은데 이 놈이 어슬렁 거리며 보랏빛의 긴 혀를 낼름거리며 우리에게로 다가온다.

도대체 뭘 어찌해야 하는지 나는 정말 정신줄을 놓고 마는데 침착한 동생이 말한다.

"언니, 스틱을 앞에두고 덤비지 못하게 막아, 그리고 소리 지르지 말고 달리지도 마라"고 한다.

동생께서 시키는데로 스틱으로 앞을 가로막는데 이 놈이 자꾸만 우리에게 파고든다.

사색이 되어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는데 아저씨 한 분이 계신다.

아저씨가 "묘적사에 있는 개인데 순하니 걱정하지 말아"는 말을 듣자 이제서야 마음이 놓이고 놓쳐버린 정신이 서서히 찾아든다.

 

"묘적사 개를 보살님들이 데리고 다녀서 아무래도 혼자서 여기까지 왔나보다"라고 하시는데 결과는 아저씨가 데려온 듯 하다.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려니 다리는 후들거리고 심장은 여전히 방망이질이다.

혼비백산을 뒤로 하고 잣나무 숲으로 들어서니 그제서야 묘적사에 대한 욕설이 튀어나오고, 저것이면 평내동 사람이 실컷 먹겟다는 말이 내 입에서 매끄럽게 흘러나오고, 묘적사에 얼마나 풍성하면 개새끼까지 저렇게 배가 부르냐, 저렇게 개를 함부로 풀어놓는 무책임은 또 웬말이냐, 된장을 발라야 하는데.. 등등 

 

지난번 벌에 이어 이번엔 개 까지..

하찮은 날벌레나 집에서 키우는 개까지 미인들을 알아보다니 정말로 큰일이다. ㅋㅋ

 

가을이 오는 길목,

자매의 마음처럼 이쁘고, 자매의 추억처럼 그리움이 배어가는 날, 하늘은 저 혼자 우둑우둑 높아만 가는 날이었다.    

 

'산이 좋아라!' 카테고리의 다른 글

늘사랑산악회 송년의 밤과 낙산사  (0) 2012.11.18
춘천 오봉산  (0) 2012.11.13
괴산 산막이옛길과 이포보  (0) 2012.06.20
괴산산막이옛길과 이포보  (0) 2012.06.20
괴산 산막이옛길  (0) 2012.06.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