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지리산,
이름만으로 벅차다.
감히 지리산을 오르리란 생각도 못했는데, 평내새마을금고 5월 산행은 지리산 바래봉이다.
매월 둘째주에 출발하는 산행이지만 이번엔 결혼식이 두건이나 되어서 내심 포기하는 마음이었다.
이번엔 빠지고 다음에 가야지... 하는데, 웬걸, 지리산이라니.
서둘러 참석못할 결혼식에 미안해하며 결혼축하금을 챙겨 보내고 편안한 마음과 설레이는 마음으로 지리산을 택했다.
임상희집사님께 알아본바로는 바래봉은 그리 힘들지 않고 우리가 걷기엔 안성맞춤이라며 부담없이 가도된다고 하길래
즐거운 마음과 '드디어 지리산이다'라는 흐뭇한 마음만을 가진채로 출발했다.(물론 산행이 시작되자마자 '착각은 자유다'를 외쳤다).
아침7시, 일찍 출발한 전세버스는 봄이며 철쭉이며 지리산이며 바래봉이라는 미명하에 이미 만원이다.
지난번 백운산행에는 빈속으로 버스를 타서 멀미 때문에 심한 고생을 했던 이유로 아침밥까지 먹고 출발한터라 다행히 멀미는 하지 않았다.
출발한 순간부터 보이는 자연은 창조주 하나님이 질서와 공의의 하나님이심을 저절로 깨우치게 한다.
연둣빛의 나무들과 매달려 나폴거리는 잎새들, 어디를 보아도 마음이 놓이고 눈이 편안하다.
4시간30분을 달려 도착한 남원의 지리산 주차장엔 전국에서 몰려든 전세버스로 초만원을 이루고, 분홍의 철쭉이 천지를 물들인 산엔 꽃만큼이나 고운 사람들이 들썩거린다.
1시간40분간 오르막이란 설명에, 설마 처음부터 끝까지 오르막이지는 않을것이라 여겼는데,
아뿔사,
단 한순간도 머물 수 없는 오르막엔 바람한점 없는 뙤약볕과 어깨를 부딪히는 사람들과 비켜설 수 없는 공간들과
몸 한번 세울 수 없는 순간들이, 행여 이 많은 사람들속에서 나만 뒤쳐질까, 그러다 길을 잃어버리고 헤매이는건 아닐까,
천리길되는 우리집을 나 혼자 헤매이게 되는건 아닐까.. 온갖 생각들이 나로 하여금 한순간도 방심하지 못하게 한다.
힘들어하는 김용순권사와 박금애집사를 뒤로하고 남필희집사와 그저 묵묵히 걷기만 한다.
미친듯이 휘돌아 핀 철쭉들을 보고 감탄하기엔 햇볕이 너무 뜨겁고, 다리가 무겁고, 점심때가 된 뱃속은 고프고,
선수들처럼 올라가는 마을금고 산행팀은 뒷모습조차 확인할 수가 없고, 제발 바람이라도 한웅큼만 불어준다면 하는 마음이 간절하지만 간절함은 간절함으로 끝나고 일행을 잃어버리기 싫은 나는 오로지 걷고 걷고 또 걷는다.
두어시간을 묵묵히 오르다보니 어느새 바래봉 삼거리에 이르른다.
아직 보이지 않는 김용순권사와 박금애,최광희집사를 남긴채, 조금 늦었다고 바래봉을 가지말라는 대장님의 말씀에
평소 얌전한 남필희집사가 '여기까지 왔는데 바래봉은 가야한다'며 당당하게 요구한다.
눈앞에 보이는 바래봉은 여전히 오르막이라 속으로 갈등이 없는건 아니다.
그러나 여기까지 왔으니 정상은 찍어야 한다는 마음에 다시 도전~
바래봉 정상을 오르니 그제서야 지리산 자락과 구비구비에 걸쳐진 지리산의 위엄이 나를 사로잡는다.
어쩐지 어머니의 품속같이 아늑하기도 하고, 아버지의 보이지 않는 마음같이 웅장하기도 한 지라산 자락들이 끝없이 펼쳐진 모습을 보니 폴짝거리던 마음마져 엄숙해지고, 장엄한 지리산앞에서 한없이 작아지는 자신을 느끼며 겸손함의 자세가 이런것이 아닐까.. 싶어진다.
바래봉을 밟고 지리산의 엄위함에 낮아짐을 배우고 내려오는 길에 푸른초원이 펼쳐지고 삼삼오오 모여서 즐겁게 식사를 하는 모습은,
힘들게 올라온 사람들이 아니라 태초부터 이곳에서 점심식사를 하고 있던 사람들같이 느껴진다.
함께 식사하자는 일행들을 뒤로하고 우리팀을 찾아 내려오는데, 최광희집사님이 마중을 나왔다.
푸른숲에서 각자가 가져온 도시락을 펼치니 진수성찬이 따로없다.
점심시간이 지났고, 오르막길을 오르느라 지칠대로 지쳤고, 지리산속에서 먹는 밥맛이란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
산행을 하면 빠져야 할 살들이 끄덕도 하지 않은 이유는 꿀맛같은 이 도시락 때문이리라.
점심시간이 끝나고 오랫만에 단체인증샷을 하고 비로서 지리산 바래봉의 철쭉들을 낱낱히 만난다.
헉헉거리던 소리대신에 꽃을 만난 아름다운 감탄사가 연이어지고 어깨를 부딪는 사람들조차 꽃으로 인해 얼굴이 붉기만 하다.
어느 한송이도 소홀할 수 없는 아름다운 꽃,
거대한 지리산의 어느 구석에 이렇게 아름다운 꽃들이 수놓여져 있었을까.
천지를 창조하시고 우리로 하여금 즐기며 누리며 보호하길 원하신 하나님의 깊고 오묘한 솜씨, 보시기에 좋았더라고 하시던 마음이 어느새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내게까지 이르른다.
하산하는 길은 좁디좁은 내리막길이 처음부터 끝까지 깔딱고개이다.
누군가는 '껄떡고개'라고 하여 웃게 하고, 누군가는 '깔딱고개'라고 하여 지치게도 하는 말들..
정말 힘이들고 고단한 등산길이었지만 마음속 가득하게 차오르는 감동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이다.
'나도 지리산에 왔다'라는 나의 자신감 넘치는 자랑질에 '이건 지리산 맛만 보는거예요' 라고 하지만
맛이면 어떻고 간이면 또 어떠리.
어찌되었건 나는 지리산엘 올랐다는 사실만으로 이미 행복하다.
비가 내리는 월요일,
토요일에 맺혀있던 지리산 바래봉의 철쭉들이 이 비에 세수를 하고
내일 다시 배시시 웃으며 피어날 것이다.
산행후, 내 마음속에 분홍꽃물이 곱게 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