쏜 화살처럼 빠르게 달아나는 세월...
1983년 12월 11일이 바로 며칠전의 일만 같은데, 어느새 26년이나 지난 옛일이 되고 말았다.
'물 찬 제비' 같다던 내가 이젠 '에고~~' 소리가 부끄러움 없이 쏟아지고 무엇인가를 하려고하면 눈치빠르게 육신의 상태를 살피게 되었으니...
며칠전부터 남편이 선물을 준비하겠다고 원하는 것을 말하라고 하지만 어쩐지 부질없이 여겨지는 것만 같아서 괜찮다며 그냥 두라고 했다.
신종플루로 인하여 묶였던 휴가가 풀어진 세현이가 때를 맞추어 4박5일간의 휴가를 왔다. 그리곤 잊지않고 내가 좋아하는 고구마 케잌을 준비했다.
목요일 밤에 세현이가 아이리스를 보지 않는다는 나에게 함께 영화보러 가자고 했다. 이건 분명히 자식키우는 일 가운데 보너스임이 틀림없다.
둘이서 '시크릿'을 보며 커다란 컵에 든 팝콘을 손을 부딪혀가며 먹고, 빨대가 꽂힌 콜라를 교대로 이쪽저쪽으로 쭉쭉 빨기도 하면서 처음으로 세현이와 영화를 보고 집에오니 12시가 넘었다.
영화를 기다리는 사이에 이마트로 가서 남편의 넥타이를 결혼기념일 선물로 역시 남편의 카드로 사고..
'당신선물로 당신카드로 넥타이 샀어"라고 하니 순진한 남편이 미안해 한다.
'당신거 사자고 했더니 왜 내 것으로 샀어?'라고..
뭐... 어차피 당신이 결재할 것이니.. 풉~~
(여전히 거기엔 관심이 없는 남자다).
세현이가 사온 케잌을 필름에 담고, 손재주라곤 영 ~ 꽝인 솜씨로 만든 성탄트리도 필름에 담아보니 그런데로 괜찮다는..
사업이라고는 하지만 웬만한 구멍가게만한 사무실을 운영하는 남편이 도무지 시간을 내기가 어렵다. 토요일 오후에 자주가던 강촌의 커피도 잊어버리고 의암댐앞에 있는 11월의 카페를 가본지도 몇년이 지났는지 모르겠다.
별일 없으면 동해안에 가서 회나 먹고오자는 말에 남편이 흔쾌하게 응한다.
오랫만에 동해안을 가는 길은 마음도 가볍고 몸도 가볍기만 하다.
서울과 춘천 고속도로를 달리니 춘천에서 동홍천까지 고속도로가 개통되었고 동홍천에서 속초로 가는 길에 전용도로가 달리기 좋게 이어져 있다.
결혼초의 그 나이를 지나고 50의 중턱을 바라보는 남편의 나이답게 자동차도 늙으수레하고 옆에 앉은 나도 그에 못지 않듯이, 딱 그만치의 속도로 달리니 정확히 2시간이 걸린다.
그것도 모르고 차에서 먹을 쥐포, 아몬드니, 커피와 음료수를 준비했으니..
예전에 최소한 3시간반은 족히 걸린 곳인데, 춘천고속도로가 이렇게 많은 변화를 가져올 줄이야..
대포항에 들러 달라진 대포항을 돌아보지만 시장기가 느껴지질 않아서 익숙한 주문진으로 향했다.
숙소를 마련하고 주문진의 밤바다를 바라보며 오붓한 회 한접시와 백세주 한병으로 지금껏 함께 한 시간들을 감사하며, 앞으로 살아갈 시간들을 감사하며, 여기까지 우리를 이끄신 하나님의 은혜에 진정으로 감사하며 잔을 부딪힌다.
안수집사의 효력일까,
한잔을 마신 남편이 술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고 비싼 술을 남겼으니..
이 또한 하나님의 은혜가 아닐까.
출근할 일이 없는 아침은 행복하게 한가롭다.
다시 대포항으로 돌아와 늦은 아침과 이른 점심으로 조개구이와 오징어순대를 먹는데 난 별로인데 남편은 아주 좋아라 한다.
조개구이가 정말 먹고싶었다고 하는데 난 그것도 몰랐으니...
겨울바다를 바라보며 깨끗한 동해바다에 마음을 두기도 하고, 나란히 앉은 철새에 마음 한자락을 남기기도 하고, 높고 우람한 설악산의 햇볕닿는 자락에 마음 한자락을 남겨놓으며 다시 우리는 일상으로 돌아왔다.
'결혼 26주년을 축하드리며 결혼 100주년까지 행복하게 사시라요~~'라는 세현이의 문자,
'결혼기념일을 축하드리며 앞으로도 지금처럼 효자로 있을께'라는 주현이의 문자에는 '좀 더 노력하면 안되겠니?ㅋㅋ' 라는 문자를 보내며
26년간 우리가정을 세우시고 이끌어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깊이 감사하는 결혼기념일을 마무리한다.
사랑하는 세 남자,
그들로 하여금 나로 하여금 천국의 기쁨을 미리 맛보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