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그대와...

어버이 날

여디디아 2006. 5. 10. 09:19

 

출근을 하기 위해 분주한 아침,  출근채비가 거의 끝나고 마지막으로 손을 씻는데 세현이가 부시시 눈을 털고 나온다.

아침마다 일어나기 싫어서 헤매던 녀석이 왠일인가 싶었더니, 나를 실망시키지 않고 부시럭거리며 손에 뭔가를 들고 나왔다.

 

아빠 가슴에 빨간 카네이션을 달아 드리고, 내 가슴엔 분홍빛의 카네이션을 달아준다.

어릴때부터 결혼기념일이나 가족들 생일이나 이름붙여진 어느하루 그냥 지남이 없는 두 아들이 얼마나 기특한지.

술렁이는 우리들의 말을 들으며 주현이가 방문을 열고 나온다. 예쁜 포장지에 둘러싸인 약병을 내민다.

 

노안에 좋고, 육체피로에 좋고, 갱년기 여성에 좋다..는 영양제 한병이 리본으로 묶여있다. 어느새 내가 거기까지 왔음을 설명서를 읽어가는 동안 긍정하지 않을수가 없다.

 

하루종일 라디오에서 어버이 날이라는 소리에 마음이 한시도 편안하지가 않다. 용서할 수 없는건 아직도 내 마음에 예수님의 사랑이 부족한 것인지. 사람의 생각이 지나치게 가득한 것인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화기에 손이 닿질 않고 마음엔 단단한 응어리가 굳어져만 간다.

 

친정엄마의 입원소식은 나를 더욱 당황하게 만들고, 달려갈 수 없는 천리길을 눈으로만 더듬으며 정신을 놓지 않으셨으면 싶다. 

 

퇴근무렵, 세현이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엄마, 우리 저녁에 외식해. 형이랑 내가 살께. 엄마 회 어때?'

이런... 군바리가,  대학생이, 빠듯한 용돈을 내가 알고 있는데 어디서 돈이 생겼을까. 꾹꾹 눌러서 돈을 쓰는 세현이의 통장에서 나왔을테고, 주현이의 얇은 통장도 한몫하나 보다..

 

내일 당장 저녁식사비의 두배가 지갑에서 나가더라도 거절은 no !!  좀 늦겠다는 세현이를 위해서 세 식구가 구리로 진출했다. 와글거리는 '용궁수산'에서 30분을 기다려 회를 먹고 다시 30분을 기다려 매운탕에 밥을 먹으니...

 

옆에 앉은 세현이가 '엄마, 나 70,000원 뿐인데..'라며 걱정을 한다. 4인가족 기준 회가 85,000원, 산사춘 한병, 밥 두 공기..

계산서를 보니 93,000원이 나왔다.

 

식사를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서는데 두 아들이 계산서를 들고 나가질 않았다. 세현이를 부르고 주현이를 불러 계산서를 넘기는데 어쩐지 아이들이 선뜻 나서지가 않고 주춤거린다.

계산서를 넘겨주고 밖으로 나오니.. 맙소사.. 두 녀석이 운동화 끈을 처음부터 매고 있는 것이 아닌가!!

 

세현이가 곁에서 속삭인다. '엄마, 정말 내가 내는거야? 모자라는데..'.. '형이 알아서 할테지뭐'.라며 고개를 돌리니 주현이의 운동화 끈은 아직도 멀고 멀었다.

멀찌기에서 남편은 상황을 둘러보며 웃고, 나는 얼른 화장실로 피했다. 화장실에서 손을 씻고 느리게 말리고 나오니..

두 아들은 아직도 운동화 끈을 묶고, 남편은 카드를 긁은후 영수증을 확인하고 있었으니...

 

식당입구로 내려오니  100원을 넣고 세현이가 커피를 뽑아와 살랑대며 엄마꺼, 아빠꺼..라며 내민다.

'자기야, 오늘 저녁값 말인데, 15일날 세현이 용돈에서 까고 줘'라고 한마디, 당연하다며 정색을 하는 아빠에게 세현이의 일침,  '응, 내가 점심 한달 굶으면 되지뭐.'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주현이의 한마디,

'이번 휴가와서는 노래방엘 한번도 못갔네, 우리가족끼리 오랫만에 노래방이나 가자'.. 주현이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러지뭐'라는 세현이의 대답..

 

우리는 설날과 추석에 손님들이 모두 돌아가면 화투판을 벌인다. 나와 주현이, 남편과 세현이, 아이들이 거둔 용돈을 노리며 화투를 치고 거기서 돈을 딴 팀이 노래방비를  부담하지만 어느한번 우리가 이겨본 적이 없다. 화투에 소질이 없는 나와 주현이, 게임에 능한 세현이와 남편이 늘 이긴다.

주현이가 군대간 다음부터 그것도 하질 못했으니 노래방가는데 망설일 이유가 없다.

 

노래방앞에서 화장실로 향한 주현이, 앞서서 인도하는 세현이, 결국 계산은 남편 몫이다.

 

두 녀석이 멋지게 불러대는 노래를 들으며 어느새 이만치 커버린 아이들을 보며 한편 서운하기도 하고 한편 대견하고 듬직하기도 하다. 듀엣으로 부르는 모습을 보니 가수들이 안부럽다.  둘 다 어디서건 뛰어나는 노래실력이다. 학교건 교회건..

 

어버이 날, 두 아들의 생색앞에서 우리는 완벽한 바가지를 쓰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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