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아침

정오의 버스

여디디아 2005. 2. 23. 13:22

정오의 버스

 

 

이 문 숙(1958~        )

 

 

여름 한낮

고요한 버스는 장의차 같네

나를 운구해 가는 저 햇볕들의

따가운 행렬

나는 이런 상상을 하네

즐거운 송장이 되어

내가 안치되고 싶은 곳,

 

가령 고슴도치가

몸뚱일 박고 단물을 들이켜는 수박의

농익은 살

벌레가 들어 앉은 풋살구

그 발그레한 봉분

그 부드러운 석실

 

- 중 략 -

 

그러나 저게 뭐냐

저기 중앙선에 둘둘 말려 있는

더러운 이불

피가 엉겨붙은 바닥

다시 일어서는 빽빽한

날짜들

동공처럼 벌어진 신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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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루한 유월의 어느오후,

안암동 로타리를 지나고 고대앞을 다가드는

저 긴 여름햇자락의 지루함,

버스안의 승객들은 마치

장의차안에 실려가는 시체같다는 느낌..

오직 나만이 살아 움직임으로 그들을 인도한다던 느낌,

나른한 햇빛처럼 엉금거리던 버스의 느림,

움직이지 않은채 영원히 붙박힐 것 같던 참담함, 

깊은 곳에서 울컥 치밀던 구토증,,

소나기라도 내렸으면..

사무친 햇빛이라도 숨어주었으면 하던 간절함..

'다음 정류장은 고대앞입니다'라고

소리치던 나이어린 안내양의 지루한

목소리의 톤까지..

선명한 모습으로 떠오르는건

그날 저장되었던 지루한 기억이

싹을 틔웠기 때문일까?

(진옥이의 한마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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