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팔 찌

여디디아 2005. 2. 23. 09:12
 

팔     찌



평소 오가며 봐둔 금은방의 문을 밀치는데 어쩐지 문이 삐걱거린다.

마음을 다잡으며 가방을 끌어안은 채 들어섰건만, 길이 난 유리문은 매끄럽게 열리는데 문을 밀치고 들어서는 난 자꾸만 삐걱거린다.

 󰡒아저씨, 팔찌 1냥이면 얼마예요?󰡓

 󰡒손님이 사시면 66만원이고 팔려고 하시면 56만원입니다󰡓.

금은방 주인은 시큰둥한 모습으로 대답을 하며, 하던 일을 계속하고 있다.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음을 알고 여기까지 왔으니 삐걱이는 마음을 무시할 수밖에 없다.

 󰡒더 비싼 가격으론 안되나요?󰡓

뻔한 질문을 던져 보는 것 역시, 마음 한 켠에선 아쉽고 아까운 탓이리라.

 지난겨울, 해마다 12월28일이면 회사에선 한해를 마무리하며 송년회를 한다.

일부러 그런 것은 아님에도 날짜는 늘 12월 28일에 맞추어 지곤 한다.

1993년 12월28일, 지금의 직장에 처음으로 출근을 한 날이다.

큰 아이 주현인 초등학교 3학년, 작은 아이 세현인 아직도 유치원생이었다.

결혼 전 내 꿈은 평범한 가정주부였었다. 아이들을 키우며 읽고 싶은 책을 마음껏 읽으며 저녁이면 퇴근하는 남편을 기다리고, 아침이면 출근하는 남편의 등 뒤에 묻은 먼지를 털어내며 아침인사를 나누는 그런 소박한 주부였었다.

 결혼 후, 날마다 자라나는 아이들이 이유가 아니었고, 50대의 시부모님과 20대의 시동생과 시누이까지 집에서 놀면서 빈둥대는 모습이 화가 났었고, 남편 하나의 월급으로 살림을 꾸려나가는 모습에 일을 택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무엇보다 유치원생인 세현이가 마음에 걸렸고, 아직은 엄마의 손으로 준비물을 챙겨야 하는 주현이가 마음에 걸렸지만 아이들 때문에 손을 내린 채 남편만을 바라볼 수 없었음으로 난 과감하게 직장생활을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

 직장생활을 하고 이듬해, 세현인 초등학교에 입학을 했고, 그때부터 우리 네 식구는 열쇠를 하나씩 가지고 다녀야만 했었다.

1학년인 세현인 목걸이로 만들고 4학년인 주현인 필통에다 열쇠를 넣고 다녔다.

누구든 집에 오면 열쇠로 문을 열고 아무도 반겨주지 않는 집안에 불을 켬으로 사람의 흔적을 남기느라 애쓰곤 했다. 아이들은 책가방을 마루에 던지고, 실내화를 가방 위에 던진 채로 엄마가 없는 집안에 활기를 채웠고, 퇴근 후 집으로 돌아오면 아이들을 찾는 일부터 나의 하루는 마무리를 하곤 했었다.

엄마의 직장생활은 아이들을 외롭게 했고, 다른 집 아이들보다 먼저 철이 들게 만들었다.

 어느 날 부턴가 개구쟁이인 줄 알았던  주현이는 방학이 되면 지친 모습으로 집으로 돌아오는 엄마를 위해서 청소를 하고, 동생과 함께 점심을 먹고, 먹은 그릇을 깨끗하게 씻어놓기 시작했다. 그렇게 여름방학을 보내고 겨울방학이 되었을 때, 주현인 밥을 하기 시작했고 뜸이 든 밥통을 열어 주걱으로 훠이훠이 저어 놓기도 했다.

아이들이 초등학교에서 중학교로, 중학교에서 고등학교로 가면서 우리는 서로의 생활에 익숙해졌고, 이것이 우리들이 살아가는 방법이란걸 깨달았다.

 주현이가 고3이 되던 날, 방학이 되자 중학교 3학년이던 세현이가 형을 대신해서 설거지를 하고 청소를 하고 밥을 지어놓으며 같은 주걱으로 밥솥에 든 밥을 훠이훠이 저어 놓기도 했다. 고3인 형을 배려하는 동생의 마음과 동생이 스스로 배울 수 있도록 행동해준 주현이가 어찌나 고마운지.. 

그렇게 10년을 하루같이 직장생활을 하고 아이들은 그런 엄마를 위해서 작은 마음을 아끼지 않았고, 엄마의 손을 덜어주기 위해서 자신들의 많은 부분을 아끼지 않았다.

 출근하는 날들이 날마다 기쁨이 아니었고,  날마다 즐겁지만은 않았음을 말해 무엇하랴.

더러는 춘천으로 끝까지 달려가고 싶었고, 더러는 아프다는 이유로 하루를 집에서 뒹굴기도 하고 싶었던 날들, 가끔 동료들과의 신경전 때문에 사표를 쓰고 싶었던 날은 또 얼마나 많았던지.

몸이 아파 누워있는 아이를 남겨놓고 출근하던 날의 설움은 또 얼마나 견딜 수 없던 아픔이었던지,  동생을 데리고 병원을 다니던 주현이, 동생의 손을 잡은 채 이발소로 다니던 주현이...  동네아이에게 놀림을 당하고 형이 보호자임을 깨닫고 형을 의지하던 세현이...

그렇게 많은 날들이 어느새 봄과 여름과 가을과 겨울을 열 번이나 바뀌게 했으니..

 지난 연말 송년회 때, 예약한 식당에서는 갈비가 익어가고, 일 년을 보내며 서로에게 덕담을 주고받고 있을 때에 조금 늦게 도착하신 사장님은 작은 상자 하나를 내미셨다.

 󰡒10년 동안 한결같은 마음으로 직장생활을 한 직원에게 감사한다󰡓라는 말씀과 함께.

예쁘게 포장한 박스를 열어보니 번쩍거리는 금팔찌가 들어있었다.

단 한 번도 내 것으로 가져보지  못한 금팔찌,

묵직한 무게로 된 팔찌는 정말 이뻤고 마음에 들었다.

 지난해부터 우리경제에 찬바람이 몰아치기 시작했다.

7년간 몸 담았던 남편의 작은 회사는 결국 문을 닫았고 남편은 일손을 놓을 수밖에 없었다.

이미 50의 문턱에 선 남편은 작은 사무실 하나를 마련하여 올해 초에 개업을 했다.

꼬박꼬박 들어오던 월급대신 빈손으로 들어오는 날들이 많아짐으로 우리 집 형편 역시 점점 쇠락할 수밖에 없음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한 장씩 날아들던 청구서가 쌓이고, 청구서의 부피만큼 돈의 액수 또한 높아지던 날, 남편이 말했다.

 󰡒당신 돈 좀 구해봐󰡓라고...

힘없이 말하는 남편이 원망스럽고 그동안 참았던 짜증이 속을 뒤집는다.

 󰡒내가 어디서 돈을 구해. 당신이 알아서 해󰡓라고 말을 했지만 답답한건 어쩔수 없다.

문득 지난겨울, 입사 10년을 축하하면서 사장님이 선물하신 팔찌가 생각이 났다.

남편에게 팔찌를 팔아야겠다고 말을 하는데 남편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다.

 󰡒빈 말이라도 팔지 말라고 해봐.󰡒라는 내게 “돈 벌어서 더 좋은 것 사 줄께󰡒라고 한다.

 더 좋은 것이 무엇일까?

 다이아몬드로 된 팔찌?  1냥짜리가 아니라 10냥짜리의 팔찌?

 무슨 소용일까?

 그 팔찌에 담겨진 나의 세월들과 나의 지루한 날들을 남편은 왜 모를까?

 마음이 그리 서운하고 허전할 수가 없다.

 10년 동안의 직장생활이 56만원의 지폐와 바꾸어지는 듯 한 상실감,

 평소 보석에 욕심이 없는 내가 언제부터 이렇게 보석에 마음을 담고 있었던가 싶을 만치의 무력감....

남편은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아서 더욱 속이 상하기만 하다.

열쇠를 목걸이로 여기며 걸고 다니던 세현이의 유년의 모습들, 비가 오면 다른 엄마들이 우산을 들고 와 아이들을 데리고 갈 때에 비가 그치기를 기다리며 멍하게 서 있었던 내 아들들, 방과 후 엄마 손을 잡은 채 아이스크림을 사러가던 아이들을 부러운 마음으로 바라보기만 했던 그 아득한 어린 날들, 학교에 찾아가지 않는 엄마를 대신해서 늘 뒤에 서서  외로워야 했던 아이들,

한 번도 엄마의 속을 썩히지 않고 반듯한 모습으로 자라준 아이들,

설거지를 하느라 주부습진이 걸렸다고 하면서도 마다하지 않고 방학이면 설거지를, 청소를, 밥 짓기를 즐겨하던 내 아이들..

형을 의지하며 동생을 거두며 서로의 외로움을 다둑이던 사랑하는 내 아들들.

팔찌를 팔며 어린 아들들이 내 눈에 밟힐 줄은 몰랐는데..

팔찌를 처분하고 회사에 들어와 밥을 먹는데 밥이 넘어가질 않는다.

시큰둥한 나를 보고 동생이 위로한다.

 󰡒언니, 금붙이를 선물할 때는 어려울 때에 그걸로 보탬이 되라는 거래. 그래서 금을 선물하는 거니까 마음 풀어󰡓라며 나를 위로한다.

애써  웃어보지만 자꾸 눈물이 쏟아진다.

동생도 덩달아 코끝이 매워지나 보다.

 󰡒언니야, 우리 오늘밤에 노천카페에서 커피 마시자. 오늘 내가 쏠께󰡒라며 부셔지는 언니를 다잡는 동생이 고맙기만 하다.

 퇴근 후, 동생과 둘이서 북한강이 한 눈에 바라보이는 언덕에서 우리는 아무런 일도 없는 듯이 커피를 마셨다.

 지난 날들이 그랬듯이 우리는 앞으로도 마음이 상할 때나, 마음이 즐거울 때나, 기쁨이 충만한 날에도 북한강을 바라보며 종이컵에 남실대는 커피를 마시리라.

목을 타고 넘어가는 커피 한 모금이 나를 위로하고 서러운 마음을 다둑여 주리라.

번쩍거리는 팔찌에 대한 내 10년의 상실감을 위로하리라.

아직도 내게는 직장이 있고, 방학이면 설거지를 해주는 아들들이 있고, 밥통 속에 든 밥을 훠이훠이 저어주는 아들들이 있는데, 언니의 서러운 마음을 알고 따뜻한 커피를 내미는 동생이 있는데, 이 모든 설움을 묵묵히 참아내는 남편이 있음으로 차라리 감사하리라.

오늘 마시는 커피는 지옥의 뜨거움으로 다가 드는 건 또 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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