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꽃을 제대로 즐기기도, 누리기도, 느끼기도 전에 봄바람은 봄꽃 위로 불어제끼고
봄비는 가녀린 봄꽃의 몸을 두드림으로 꽃잎을 떨어트리고 말았다.
나만 제대로 느끼지 못한 봄인줄 알았는데 동생도 새로운 봄을, 봄꽃을 제대로 느끼지 못했다고 투덜거리다가
우리는 사월 세번째의 주말을 맞이했다.
성희의 중간고사가 있다기에 인아를 돌봐주러 가기로 했는데 이런저런 이유로 모른척 하며,
요플레와 커피와 과자와 오렌지와 방울토마토를 넣은채 청안 이씨 두자매는 관음봉과 된봉을 올랐다.
여유로운 아침이지만 부지런한 우리는 7시반에 만나 호평동 동양파라곤에서 가볍게 몸을 푼 후 출발했다.
아무리 작은 뒷산이라도 우리 자매의 출발은 요란하다.
배낭을 내려놓은채 마치 백두산이라도 아니 천마산 정상이라도 오를 것처럼 준비운동을 하는 모습을 부지런한 새벽을 깨워 이미 산을 내려오는 사람들이 바라보기도 하고, 우리처럼 배낭을 메고 산행을 시작하는 사람들의 얄궂다는 눈총을 받기도 하고,
준비운동을 하는 것이 아주 바람직하다는 어느 분들의 눈빛을 받기도 하고, 그까짓 천마산을 오르며 요란하게 준비운동씩이나 한다는 같잖은 눈총을 느끼기도 하지만, 역시 우리 자매는 지은 죄가 없으므로, 체지방이 고깃집 숯불이 타오르듯이 살금살금 타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런 준비운동이 우리를 몇 년쯤 더 산행할 수 있게 만든다는 확신으로 팔을 이리저리 뻗고 허리를 돌리기도 하고 무릎을 돌리기도 하고 목을 돌리고 다리를 앞으로 뒤로 옆으로 뻗기를 반복한다.
며칠전 내린 봄비는 천마산 계곡에 물을 더함으로 물소리가 제법 우렁차다.
콰랑콰랑 흘러내리는 계곡물을 보자니 역시 계곡엔 물이 차야 멋지고, 산에는 나무와 꽃들이 가득해야 아름답고
우리 자매는 화장을 하고 꾸미고 웃어야 이쁘다는 사실이다.
계곡길을 따라 오르며 그동안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시작으로 중간중간에 꽃들에게 눈맞춤하며,
찰랑거리는 나뭇잎에 마음을 두기도 하며 지나는 봄을 놓치지 않기 위하여 사진으로 입으로 자꾸만 봄을 들먹거려도 지나치지 않는다.
천마산으로 향하는 삼거리에 이르니 커다란 벚나무에 아직도 벚꽃이 활짝 피어서 우리를 반긴다.
봄꽃을 제대로 느끼지 못한 우리 자매를 위하여 남아 있는거라며 억지스런 이유도 들이댄다.
진달래가 가득하던 길에는 어느새 연달래가 가득하여 우리자매의 입을 다물지 못하게 하고, 연달래 나무가 마치 밤나무가 되듯이 커서 우리의 편견이 얼마나 익숙한 것인지를 깨닫게 만들기도 한다.
연록색의 잎새와 연한 빛의 연달래가 얼마나 아름답고 이쁜지
무엇에 대한 누구에 대한 감사인지 몰라도 우리는 감사와 기쁨이 충만함을 느낀다.
동생이라기보다는 친구같고 때로는 건방진 언니같기도 하고, 때론 한없이 어린 동생이기도 한 우리의 산행은 참 편안하다.
고등학교 입학때부터 전문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모든 학비를 내가 책임졌기에 특별히 마음이 가기도 하고, 동생 역시 언니의 수고에 늘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기에 더욱 특별한지도 모르겠다.
댓가를 바라지 않고 오직 부모님의 손길을 돕는다는 마음으로, 동생이 나보다는 더 나은 사람이 되기를 바라던 기특하고 대견했던 내가 가끔 장해 보이기도 하다.
모든 것에는 때가 있듯이 그때가 아니었다면 필요하지도 않았으니 할 수 있을 그때에 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깨닫기도 한다.
오붓한 산길을 걸으며 이쁘게 피어난 봄꽃을 보며 우린 어린 날의 추억을 떠올린다.
지게 가득하게 진달래를 꺾어오셔서 빈 병마다 가득하게 꽂아서 어린 딸들이 교실로 들고가게 하시던 아버지의 주름진 얼굴과 하얀 조팝꽃을 아름드리 꺾어오시던 아버지, 하얀 조팝꽃이 부엌 한 구석에서 다시 새봄이 찾아와 조팝꽃을 피울 때까지,
사계절 내내 재를 뒤집어 씌어 하얀 꽃이 까만 꽃이 되도록 부엌구석에 놓아두시던 엄마를 이야기 할때면 우린 늘 웃는다.
아무래도 아버지와 엄마의 사랑의 표현이었음을 이제서야 깨닫게 되고는 말이다.
둘이서 걷는 길엔 늘 어린시절이 있고 가난하지만 화목한 모습의 아홉식구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짧은 봄이 지나는 날,
한 순간이라도 붙들고 싶은 우리의 산행은 여전히 봄꽃처럼 아름답고 봄볕처럼 화사하고 나뭇가지에 유영하는 봄바람처럼
재미지고 또한 건강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