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은 곱고 아름다운 단풍과 높고 파란 가을하늘로 다가와야 하는데
언제부턴가 내게 오는 가을은 만성 알레르기 비염으로 인해 콧물과 입천장이 가려움과 이유없이 눈이 가려움으로 시작한다. 참 ~
시도때도 없이 콧물이 흐르고 입이 마른 것을 귀찮아 할 즈음에 매일 오르던 백봉산 자락에 고운 단풍을 발견하는가 했는데 이미 길바닥엔 메마른 낙엽이
수북하게 쌓여가고 있었다.
아름다운 가을보다 쓸쓸한 가을을 먼저 보고 느낀 서먹한 날이었을게다.
백조가 된지도 어느덧 1년이 휙~불어제치는 가을바람의 한줄금처럼 지나고나니 아쉬운건 뭐니뭐니해도 머니다.
도대체 무엇으로 용돈에 보탤까 궁리하던 날,
아파트 엘리베이터에 인구주택총조사 조사원 모집원을 보았을 때는 이미 마감이 하루 지난 날이었으니..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읍사무소에 신청을 하고 기다리니 예비조사원이라는 연락이 왔다.
전수조사원과 표본조사원, 예비조사원과 관리자까지 교육을 받은 날, 아무래도 교육만 받기에는 억울한 생각에 담당공무원에게 찾아갔다.
교육으로만 그치지 말고 나도 참여하겟다고 부탁을 하고서야 마음이 놓인다.
교육을 받고보니 만만찮은 일임을 깨달은 등록자들이 속속 빠져나가고 그 자리에 쏘~옥 들어와 앉고나니 뭔가를 한다는 긴장감이 오랫만에 나를 설레이게 한다.
또 하나, 나의 본질적인 근성이 슬슬 발동을 시작한다.
"남들보다 열심히, 남들보다 훨씬 잘해야지"라는.. 병이다.
남들은 들어다보지 않은 사이버강의를 몇번씩이나 듣고 보고, 읍사무소에서 하는 교육을 듣고 졸고..
그렇게 기다리다보니 11월의 찬바람이 화도읍에도 쓸쓸하게 불어온다.
화도읍사무소에서 가방과 호신용과 후레쉬와 조사지들을 받고 내게 주어진 조사구로 향했다.
조사구가 주어지자 여기저기서 볼멘 소리가 난다.
누구는 아파트만 배당되었고 누구는 시골구석만 배당이 되었고, 누구는 읍사무소 누군가가 좋은 곳으로 지정해 주었고 누구는 또 어느 빽이 가까운 곳으로 해주었다나..
이런 작은 일에도 줄을 찾고 빽을 찾는 모습을 보니 한심한 생각이 들고 정치인들의 불룩한 배와 거만한 턱이 충분히 이해가 된다.
도대체 언제쯤 우리의 근성이 이런 터무니없는 허영심에서 벗어나 스스로의 정체성에 긍지를 갖게될까.
내가 맡은 조사구는 두산아파트 1동과 금남2리이다.
아파트에는 인터넷 참여율이 높은 반면, 비어있는 집은 사람 만나기가 여간 어렵지가 않다.
첫날 두산아파트에 들러 빈 가구에는 안내문을 붙히다보니 이미 저녁시간이라 두산아파트에 살고있는 동생에게서 저녁을 먹고, 퇴근을 마친 가족들이 도착하는 시간을 이용해 조사를 했다. 꼬치꼬치 묻는다고 화를 내는 사람, 남편이 대답을 한다고 드러내놓고 질투를 하는 여자, 힘이 든다고 커피를 내미는 분, 삶은 고구마를 권하시는 할머니.. 사람사는 모습을 이렇게 많이 들여다보다니... 감사한 일이다.
화요일은 금남리로 향했다.
직장생활을 5~6년간 금남리에서 했기 때문에 낯설지 않고 오히려 고향을 찾은듯 반갑기조차 하다.
금남리에는 노인들이 많이 계시기 때문에 인터넷 참여율이 낮은 대신 사람들을 밭이나 들에서 만나는 일이 많다.
젊은 사람은 찾아볼 수가 없고 할머니 할아버지 등 독거노인이 많이 계시기 때문에 홍삼과 콩으로 만든 사탕 두봉지를 사서 조사후에 한웅큼씩 드리니 아주 좋아하신다. 자자식자랑, 당신의 젊은시절 자랑, 재산자랑, 이미 지나간 세월의 야속함을 줄줄이 꺼내시는 바람에 한 가구당 족히 20분씩은 걸린다.
시골에서 혼자 계신 엄마를 생각하니 그분들의 이야기를 자를 수가 없다. 이 또한 효도임을 생각하며 느긋한 마음으로 이야기를 들어드리고 물도 얻어 마신다.
과거에 든든했던 재산을 보증한번 잘못 서는 바람에 모래성처럼 날리고 이제는 노모와 함께 지하단칸방에서 살고 있다는 남자는 조사를 완강하게 거부한다.
인터넷으로 하려다 성질이 나서 못하겠다..며 걷어치우셨다고..
옆집아줌마에게 조사를 하는데 옆에서 할 필요없다며 퉁박을 놓고 죄 없는 내게 인상을 쓰니 도대체 어쩌라는 것인지..
그러다 혼자서 종이컵에 커피를 마시는 걸 보고는 "커피 저도 한잔 주세요"라고 했더니 태도가 180도 변하며 조사에 응해 주신다.
할머니는 꼼짝을 못하고 누워계시고, 할아버지는 할머니의 병수발을 들고 계시고, 아들은 이혼 후 혼자 떠돌고, 군에 다녀온 손자는 집에서 놀고, 손녀는 직장을 다니며 손녀의 신랑까지 얹혀서 놀고 있는 가정을 보니 숨이 턱~ 막힌다. 할 말 없이 그저 사탕만 수북하게 내밀고만다.
밭에서 무를 뽑던 권사님은 고생한다며 요즘 귀한 무를 8개나 주셔서 싱싱한 무우로 생채도 만들어 먹는 기쁨도 누린다.
대여섯번을 가도 빈집, 그때마다 전화번호가 적힌 안내문을 붙여놓아도 전화조차 없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안내문을 본 즉시 나를 찾아나서신 분, 전화를 주신 분도 계시는 걸 보니 사람의 됨됨이와 성격이 얼마나 갖가지인가를 깨닫게 된다.
이번주까지 모든 조사를 마쳐야 하는데 주일오후에배를 마치고 몇번을 가도 만나지 못한 가구를 찾아가 마무리를 지었다.
전수 조사는 19문항이지만 내가 맡은 표본조사는 50문항이라 조사를 하는데 여간 부담스럽지가 않다.
무작위로 선정한 가구에 좀 더 깊은 것까지 캐물어야 하는 일이라 욕도 많이 얻어 먹었다. ㅠㅠ
그렇지만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기에 마음에 담지 않고 그 집을 나오는 순간 잊어버리기로 했다.
100여가구를 마치고나니 팔과 어깨와 다리가 많이 아프지만 나름대로 뿌듯함이 있다.
용돈에도 도움이 되지만 그보다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었던 기회였고 내게 주어진 날들과 나의 일상이 얼마나 감사한 삶인지를 깨닫게 되었다.
이번 조사를 통해서 우리나라의 인구와 주택이 어떠한가를 알게되고, 실업율과 고령자의 비율이 또한 얼마이며 가구당 소둑과 해결해야 할 문제가 무엇인지를 정확히 짚어내며 정부에서 이를 위해서 적극적으로 정책을 세우고 이루어갔으면 하는 바래움이 간절하다.
특히 독거노인들을 위한 대책이 시급하며, 혼자서 아이를 키우는(의외로 사별이 많았다) 이들에게 대책을 마련해 주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2010년 인구주택총조사..
아직도 동참하지 못하신 분들, 속히 동참하시고 조사원들에게 따뜻한 커피 한잔 대접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