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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여디디아 2005. 2. 21. 15:21
  2003년에 쓴 글입니다.

어느새 한달이 지난 날...

창을 열자 찔레꽃이 나를 반기던 날이 아마 오래전에 내게 있었던 일이리라. 창문을 여니 와락 덤비는건 하얗고 소복한 찔레꽃이 아니라 이미 웃자란 찔레꽃잎과 넝쿨을 얽어맨 칡넝쿨이다.

내 눈에 보이지 않는 틈에, 아이들이 자는 시간에, 얄궂게도 내가 고개를 돌린 시간에 주현이와 세현이가 키가 훌쩍 자라버리듯이 그렇게, 당신이 나를 눈여겨 보아주지 않았던 무심한 시간들 속에서고 나는 이렇듯 자라고 있었노라며, 고약한 웃음을 입에 문채로  칡이파리가 내 얼굴을 가릴만치 자라 어느순간 창문을 열어줄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날마다 새로운 꽃들이 낯선 듯이, 그러나 익숙한 낯으로 피어나던 봄날은 미련없이 지나가고 꽃이 진 자리엔 여드름 자국같은 흉터만을 남긴채 이파리는 이는 바람에 마음껏 자신의 육신을 흔들고 있는 것이다.

꽃이 피었다가 지는 그 짧은 틈새로 나느 얼마나 모진 시간들을 이겨내고 있었던지, 이겨낸 것이 아니고 지나길 바라고 있었던 것이었음을 숨기지 말기로 하자.누구든 받아들이기 보다는 나를 밀어내려는 이들에게 대한 복수심은 얼마나 치열하고 용감했었나.. 누구든 나 대신 형벌을 내려주었으면 싶었고 어느순간 할퀴고 쥐어뜯고 싶었었던 전투적이었던 마음, 이쯤에서 미련없이 훌훌 털어내지 못하는 내 생활의 곤고함과 빈핍함은 또 얼마나 나를 상처나고 피흘리게 만들었던지, 무망하던 내일과 허무하던 오늘, 다시는 웃지 않으리라던 스스로의 다짐과, 이후의 모든 시간들을 마주치지 않으리라던 결의까지,,

그럼에도 아침이면 무심한 듯이 인사를 나누고 점심이면 힘겹게 먹는 모습마져도 바라보아야 하던 시간들, 여섯시가 지나면 집으로 간다는 생각보다 다시는 이곳으로 오지 않았으면 하던 헛된 바램들..

희망이나 기쁨 대신 절망과 설움만을 가진채 맞이하는 아침이란 또 얼마나 나를 무참하게 만들었던지, 하루를 보낸다는 사실보다 순간을 견디는 고독을 얼마나 버거워했던가, 야멸차게 퍼부어대던 속으로의 독설들, 평온한척 해야하던 겉모습의 관심없는 표정은 또한 나를 얼마나 힘이들게 만들었던지.소복하고 다북하던 찔레꽃이 진 자리에 열매를 맺기위한 씨주머니처럼 내 마음속에 박힌 못은 아직도 튼실하여 견고한데.. 이제 자부룩한 밤꽃얘 월산리를 흔들고 남양주를 흔들고 내 집에서 보이는 앞산을 뒤엎어있다.

이쯤에서 미워하던 마음을 놓아줌으로 내가 자유롭고 싶다.

사랑할 수 없다면 미워할 수 있는 마음조차 벗으리라..여겨보며.

사랑할 대상에서 누군가를 지워야하는 슬픔을 맛보며 유월열여드렛날에..

새로운 출발을 위하여..

꾸무레한 날씨가 비라도 내리려나 보다.

늘상 같은 날들이 이어지지만 오늘은 좀 더 새롭게 맞이하고 싶었다. 아침부터 조금씩 치미는 짜증은 먹다만 음식 찌끼처럼 꺼림칙했지만 새로운 출발을 위하여 메주를 누르듯이 꾹꾹 누르느라 나름데로 애썼다.

방 청소를 하고 거실을 청소하고, 세탁기에서 꺼낸 세탁물에다 담그어둔 셔츠와 블라우스까지를 널고나니 자꾸만 침대에 뒹구는 남편에 대하여 울화가 치밀어 오른다. 그래도 참으리라.. 여기며 참아보았다. 아니 참았다.

시계는 바쁜 나를 무심한척 넘기며 여전히 여덟시를 가리키고 난 쫓기듯이두개의 도리락과 빗자루, 스티커까지를 들고 나오느라 끙끙거리다가 기어히 문을 열고 퍼부어댔다. ‘이렇게 무거운 뭐하러 여기까지 끌고오느냐’며.

눈앞에 다가온 엘리비이터에 몸을 실으면서도 자꾸만 후회와 그만치의 짜증이 나를 몰아쳐 14층에서 합류한 혜지가 건너는 인사마저 건성으로 들으며 형식적으로 대답을 건너고 말았다.

출근을 해도 짜증스런 얼굴들, 유난히 나에게 예민한 공장장의 신경은 끝까지 나를 괴롭힘으로 한시라도 빨리 그 자리를 떠나고프게 만든다.

슬쩍 그은 차 모서리가 기어히 나를 나락으로 떨어트린채 벗어나지 못할 구덩이로 밀고만다.

집에선 남편과 주현이의 신경전, 세현이의 압박같은 공부.

집이란 언제 어디서건 들어가고픈 곳이라던 나의 관념은 어느새 ‘들어가기 싫은 곳’으로 바뀌곤한다.

어디가서 시간을 보내다 아주 늦은 시간에 들어올까, 아니 들어가고 싶다..라는 유혹이 나를 휘어잡고 있다. 아니 세현이와 둘만이 살았으면 하는 간절함까지도 느끼고 있음을 ....

7월의 첫날이 나를 이렇게 패배감에 젖게 하다니...

누군가의 사랑으로 7월이 시작되고 나의 사랑으로 7월이 가득하게 채워지길 바랬는데...

어디선가 지금도 청포도가 익어가고 있을테고 검은 포도는 알을 굵게 하기위해서 내리는 이슬의 차가움도 마다하지 않으리라.

과일이 익어가듯이, 굵어가듯이 내 생활도 성숙한 모습으로 익어갔으면 좋을텐데 자꾸만 바보가 되어가는 사실을 어찌할까.

오늘은 그냥 이렇게 보내자.

더러운 기분을 더러운데로, 집에 들어가기 싫음 하루쯤 외박도 하자.

나도 나로서의 온전한 나이고 싶다. 7월은 참 힘겹게 내게로 왔다.

찬연한 날이다. 빗살무늬 같은 해맑은 햇살이 온 누리에 골고루 비추이고 있다. 어느 한곳도 덜함도 없이, 더함도 없이.

칠월의 햇살에 몸을 실은 세상에 있는 모든 생명들은 윤기를 더함으로 반짝거리며 빛을 발하고 있는  한가로운 오전, 왠지 소망의 아침이다.

어제는 풀을 뽑아낸 빈 자리를 메꾸느라 봉선화와 분꽃을 사다 가지런하게 심었다. 빨갛고 하얀 봉선화가 이쁘게 피는 모습은 상상만으로 이미 행복하다. 시골집 거름터미를 돌아 화장실 문앞에까지 우거지게 피어나던 봉선화가 생각이나 화장실 옆에까지 몇포기를 심었다.

엄마는 화장실이란 메스꺼움을 꽃으로 이기려고 그러셨을까?

유난하게 우거지던 봉선화는 잘 가꾼 엄마의 억센 손등의 주름까지도 수고를 아끼지 않았기 때문이리라.  방학을 맞아 외할머니댁으로 혹은 큰어머니 댁으로, 어릴적의 고향으로 보현을 찾는 이들이 봉선화앞에서 숨을 고르고 그냥 돌아서기가 억울함인지, 자신의 손가락을 펴보곤 조심스레 엄마에게 봉선화 꽃을 따가도 좋으냐고 묻곤 한다. 단 한번의 예외도 없이, 이 아침에 쏟아지는 햇살이 예외없이 골고루 비추이듯이, 어느 누구도 거절하지 않은채 꽃을 따가도록 허락하는 엄마, 꽃을 물들이는 방법까지, 실로 찬찬 동여매듯이 설명하는 엄마의 노파심까지도 꽃을 얻어가는 입장이라 웃음진 얼굴을 끄덕이며 들어주던 낯모르는 사람들.

훑어간 자리에 다음날 어김없이 소탐스런 꽃들이 빨갛게 피어나던 것은 엄마의 꽃에 대한 사랑일까, 이웃에 대한 작은 사랑의 실천일까, 고향을 찾은 이들의 꽃같은 추억일까....

봉선화의 어울거림탓으로 화장실 가는것도 즐거움이 된채로, 화장실앞을 쓰다듬는 빗줄기마져도 꽃물이던 것을...오늘 아침도 팔순을 바라보는 엄마의 발길 끝에 봉선화가 꽃망울을 맺을테고, 머리들어 보이는 앞산엔 녹음이 우러르며, 뒷산엔 도라지 꽃이 보랏빛으로 흰 빛으로 피고  또 질테지?

엄마를 생각하며 봉선화의 꽃이 빨간색이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고르고 옆에있는 분꽃도 몇포기를 골랐다. 여전히 봉선화옆에 아름아름 피어나던 분홍의 분꽃이 생각나기도 하고, 여학생들의 모습이 분꽃처럼 예쁘다는 국어선생님의 이쁜 표현을 건너뛸 수 없었기 때문이다.

어제 심은 봉선화에 오늘아침 엷은 분홍색의 꽃이 급하게도 피었다. 어우러지는 대신 빈약한 모습으로  피었지만 반가운 마음은 오랜만에 반가운 친구를 만난 듯 하다.

이제 아침이면 소망을 품음으로 봉선화를 바라보며 분꽃을 바라보리라.

   어느새 나 또한 한포기 들꽃이 된채로.  칠월 나흗날 오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