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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들

여디디아 2005. 2. 21. 15:20
 

어느 날...

청아하고 청명한 날, 작은 유리창을 열면 찔레나무가 하얀 꽃을 피우기 위하여 연초록의 이파리를 봄바람에 위무받으며 나비들의 희롱조차도 무심한채로 받아 넘기고, 길게 어우러진 가지 끝에 달라붙은 가시가 살을 더함으로  튼실한 찔레를 맺히게 하리라.

찔레나무 위로 노란빛에 가까운 밤나무 이파리가 싹을 틔웠고, 싹이 튼  끝동마다 밤꽃을 피우기 위해서 열매같은 꽃망울이 수도 헤아릴 수 없이 맺혀져 있다. 연록의 이파리들 사이로 지나는 봄바람이 여름을 몰고 햇살은 또한 여름에 가까움으로 열기를 더함으로  하늘을 마주볼 수 조차 없도록 만드는 오늘, 더 이상 좋을 날씨가 없을 듯 싶을만치 화사한 날은 어쩐지 내게는 미지근한 날처럼 미직하게 지나고 마는 사실에 놀란다.

변함없는 일상의 모습으로, 나른하기도 하고, 구역질나게 배부르기도 하고, 왁자한 소리들에 인상쓰이는... 그런 미지근한 날의 어느 하루일 뿐임이 놀랍기만 하다. 아름다운 날을 주신 하나님께 대한 모독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느끼며 선듯한 두려움에 부르르 몸을 떨어보기도 한다.

내가 원하는 날은 대체 어느 날의 어떤 모양일까?

아무도 없는 곳에서 혼자만의 삶을 적막함속에 지내는.. 그런 삶을 원한 것일까?  여전히 친구들과 마주앉아 속절없는 이야기들에 시간의 흐름조차도 느끼지 못하고 두서없이 보내 버리는 그런 삶을 원하는 것일까?

요즘 나를 힘들게 하는 것들은 무엇일까?

하나님앞에서 바르지 못한 나의 이중적인 생활과 가족간의 삶일지라도 물질이 궁핍하면 스스로 불행할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일까?

나만을 당신이 전부라며  달콤한 말들로 속삭이는 사람의 또다른 면을 보아버린, 은밀한 것을 보아버린 아이가 더 이상의 은밀함을 느끼지 못하는 허무같은 비린내일까?

그래, 그런 것들이, 나의 마음을 붙잡았고, 나의 생활을 지배했고, 나의 삶을 차지했음을 알고 있다. 거기서 마음이 무너져 내리는 슬픔또한 맞는 말임을 애써 숨기지 말자.

아직은 그들에게서 빠져 나올수 없는 자신을 알고, 또한 빠져 나올수조차 없는 나의 빈 몸과 텅 빈 마음을 알고 있다. 나에게 물질을 요구하고 마음을 요구하는 그들을 외면치 못할뿐만 아니라 그들의 외면이 또한 두려움으로 혼자 낑낑거리는 봄날의 마흔 다섯의 힘없는 여인네의 모습은 그래서 미지근하다는 것을....

            


              2003년  4월 30일 가는 봄날이, 가는 4월이 또한 서러움으로



....또 어느 날... 

자잘하게 피어나던 잎새가 어느덧 난무한 바람들속에서 몸짓이 부풀어 올라 나뭇잎이 되어 작게나마 그늘을 만들고, 연한 빛깔의 나뭇잎들이 반짝거리는 햇빛을 수천개로, 수만개로 나뉘면서도 마냥 즐거운 듯 팔랑거리는 오후, 비죽하게 가지를 뻗은 찔레나무는 초록의 줄기위로 빨간색의 가시를 몸에 붙임으로 누구도 근접할 수 없는 완강한 거부의 몸짓을 내보이며, 찔레덩쿨아래서 가늘게 자라던 원추리는 어느새 억센 모양의 이파리가 손으로 갖다대면 살을 벨 것 같은 날카로움을 느끼게 하는데...

반질한 알밤을 맺기 위해서 과정의 일환으로 밤꽃을 피우기 위하여 준비중인 커다란 밤나무 아래로, 찔레덩쿨 아래로 갖가지의 꽃들이 제각기 피어나는 흙덩어리 위로, 어디쯤에선가 뱀이 징그러운 모양으로 꿈틀거릴것만 같아서 한발짝도 오르질 못하는 바보가 되어 그저 눈으로만 훑어내리며, 마음으로만 느끼며, 이는 가슴으로만 바라보는, 자연의 아름다움을 또한 입으로만 찬양하는, 어쩌면 게으르기 한이 없는 나를 발견하는건 부끄러운 자화상인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이웃들의 아픔을 무심하게 여기며 지나치는 안일함은, 여상한 일상의 내 안녕과 바꾸고 싶지않은 욕심일 수도 있으며, 그 아픔이 내것이 아님에 안도하는 하찮은 인간의 모습일지도 모르겠다.

아들같은 청년의 주검에서 느꼈던 애절한 통곡과는 다르고, 친구같은 집사님의 놓지 못한 안타까움에서 느끼던 주검과는 또다른 무엇이 나를 휘감는다.

늘 나에게 상추며, 배추며, 파를 가져다 먹으라고 말씀하시던 모습, 술이 취한 모습은  그렇지 않을때보다 훨씬 더 많았음을 알기에 더욱 안타까운지도 모른다. 술이 취한채로 혀가 감겨 올라가고, 부리부리한 눈가에 눈곱이 젖은채로 끼어있던 모습도, 누런 치아를 드러내며 허허 웃으시던 모습도, 우리 우진엄마 잘봐주라던 지극한 아내사랑도, 어느가을날, 하루종일 나무를 심은 댓가로 받은 일당을 아줌마에게 찾아와 건너던 모습, 맛있는 것 드시라며 만원권을 건네시던 모습.... 아! 8살아래의 아줌마가 바람이라도 피울까봐 늘 전전긍긍하던 아저씨.. 지금쯤 마음이 놓이실까, 저 세상에서도 아줌마에 대한 마음을 놓지 못함으로 끙끙대는건 아닐지...

갑작스런 부음은 나를 어리둥절하게 만들뿐만 아니라, 10년을 같이지낸 아줌마에 대한 나의 마음이 어떤건지를 가르쳐 주었고  이미 운명을 달리하신 아저씨보다 혼자남은 아줌마가 더욱 안쓰러움으로 여자로서의 삶의 버거움을 깨우쳐 주는건가 보다.

같은 길을, 같은 속도로, 같은 일을 하기 위하여 자박자박 걸어오는 아줌마를 보는순간, 땅에 박은듯한 발자국들이 왜그리도 서러운지, 작은 체구가득가 어쩜 그리도 외롭고 서러운지,  눈길이 닿은 부분마다 무엇이 그토록이나 서럽게 울게 만드는지,,,

TV를 보는중에도 옆에 여전히 아저씨가 앉아 있는 듯하고, 셋이서 마주하던 식탁에 문득 두 여자만이 덩그랗게 앉아있음을 깨닫고는 할머니와 함께 밥숟가락을 놓아야 하는 아줌마, 시어머니가 서러울까봐 울지 못하는 며느리와, 며느리의 외로움과 서러움 때문에 울음을 삼켜야 하는 시어머니.

혼자 잠을 자기가 두려워 시어머니와 나란히 누운채로 잠을 청하는 젊은 여인은 앞으로 긴긴 밤을 무서움으로 또한 어이할지.. 시간이 흐른 뒤 찾아드는 외로움을 또한 어이할지. 그 너머에 찾아들 설움을 또한 어이해얄지..

며느리가 보이지 않는 밭에서 파를 뽑으며 울고, 얼마전 아들과 함께 심어놓은 고추에 버팀목을 세우며, 같이 세울 아들이 이미 당신보다 먼저 저 세상에 간 것에 대한 애통함보다, 홀로남은 며느리가 가엾어 울어야 하는 시어머니의 절여진 배추보다 더 절인  가슴속 울음들..

너무 쉽게 놓아버린 당신의 목숨이야 당신이 그렇게 했다지만 남은 이들의 서러움을 왜그리 헤아리지 못했을까, 홀로된 며느리 때문에 애닯은 어머니를 생각하지 않고, 아직도 젊은 아내의 긴 외로움과 설움을 왜 생각하지 않았을까, 2개월 남은 군생활을 끝내고 돌아와 할머니와 부모님과 같이 열심히 살아야겠다고 틈만나면 전화하는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왜 생각하지 않았을까 ...  너무나 무심하고 무정한 아저씨... 명복을 빌기보다 원망이 먼저임은 그들의 삶을 너무나 잘 알기 때문이리라.

일주일만에 출근한 아줌마의 모습이 자꾸만 가슴 아프고, 아직도 선명한 아저씨의 어진 모습과 술에 절인 모습이 또한 금새라도 다시 뵐 수 있을것만 같으다.

오월은 윤기를 흘리며 어디 한곳도 부족함이 없이 아름다운데 인간만은 왜 이리도 서늘한 서러움을 느껴야 하는지.

아무 쓰잘데기 없다는 아카시아가 꽃을 피우기 위해서 한들거리고, 가시로 중무장한 찔레꽃도 꽃을 피우기 위해서 하늘을 바라보며 햇살을 누리는데, 나는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지.

막막한 내 마음에도 바람이 지나고 오월의 밝은 햇살이 축복처럼 퍼졌으면 좋겠다. 하찮은 염려로 인하여 마음이 가라앉으며, 내일에 대한 걱정으로 내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지는 일이 없었으면 좋으련만.

여전히 싱긋한 바람은 내 얼굴을 지나고 내 마음을 휘저으며 시간속으로 스미는 것을....         

                

그나마 좋은 계절 좋은 날씨에 저 세상으로 가신 아저씰 생각하고 홀로남은 아줌마를 안타까워하며, 또한 아저씨의 명복을 빌며.


                                

                               2003년  5월  16일 오후 4시에 진옥




며칠후...

時間은 긴 밤을 자고 일어난 얼굴위로 침 자국이 묻었고, 눈곱이 끼이고, 더부룩한 머리카락은 폭탄을 피해온 살기위해 미친 듯이 달려온 여자의 모습으로 난도질을 한듯하고.. 거울속에 비치는 추한 여자의 모습을 씨어내기 위해 잘 다듬어진 수도꼭지를 비틀어 물을 받고, 양손을 오므리고 물을 받는 손가락들 사이로 흘러내리는 물과 같이  어딘가로 흘러가버리고 말았음을 다시금 확인한다.

단 사흘간의 시간을 닫아놓은 창문을 열어본순간 나도몰래 비명같은 탄성을 자아내고 말았다. 지난 금요일에도 보이질 않았던 찔레꽃이 그세 해당화   의 모습같기도 하고 장미의 모습같기도 함으로 몇송이가 화들짝 피어있다.

하얗게 핀 꽃들이 너무나 이뻐 한참을 들여다보자니, 그동안 발견하지 못했던 밤나무가 눈으로 들어온다. 하얀 꽃잎사이로, 연록의 이파리 사이로, 비죽한 가시곁으로 이파리가 삐죽한 밤나무가 높이 자라고 있다. 찔레덩쿨을 전혀 개의치 않은 듯이, 마치도 자신이 잇어야 할 자리임이 확실한 듯이 당당하게 하늘을 우러르는 밤나무는 곁에선 밤나무에서 굴러온 알밤이 자랐기 때문일까? 새삼스런 눈으로 주위를 둘러보니 여기저기에 밤나무가 많다. 가을이면 알밤을 톡톡 떨어트릴 커다란 나무가 있는가 하면 중키의 밤나무와 태어난지 얼마되지 않은 어린 밤나무도 꽤 많이 있다. 누군가 심지 않아도 열매가 썩음으로 싹이 트고, 싹이튼 나무는 수분과 햇볕을 골고루 섭취함으로 아무런 보살핌도 없음에도 잘 자라고 있다.  아직은 여리기만 한 밤나무들이 몇해가 지나면 또록한 알밤을 떨어트림으로 자신과 같은 사생아를 또한 해산하리라. 그리함으로 이 산에서 밤나무는 대를 이어가고 영원히 존재하리라. 내가 살아가는 날까지 밤이 열리고 밤꽃이 피고, 내가 이 세상을 작별한 후에도 여전히 봄이면 싹이트고, 여름이면 밤꽃이 자부룩히 피어나고, 가을이면 또록한 알밤들로 다람쥐들이 즐거워하리라.

지난해에 이상 문학상을 수상한 ‘권지예‘라는, 나보다 한 살이 아래인 경주가 고향인 여자의 책을 읽는다. ’뱀장어스튜‘라는 수상집을 읽을때부터 그 여자의 대범한 문장과 내용에 놀랐는데, 여전히 그녀의 글은 예사롭지가 않다. 그럼에도 무겁고 끈적거려 덩달아 마음까지 무거워짐을 어쩔수가 없다.

내속을 자극함으로 부끄럽게도 만들고 어느순간 내것이 아님을 또한 최면처럼 되뇌이기도 한다.

... 사람이란, 사랑이란... 정말 무언가... 잠시 허무해진다.

그러면서도 책을 덮을수 없는 것 역시 책이주는 마력이리라.

 2003년 5월 19일 월요일, 창을 열자 찔레꽃이 나를 반김으로 놀란 날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