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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양주에 사는 행복

여디디아 2005. 2. 21. 15:10

  


입춘이 지났다.

다시는 봄이 내  곁으로 돌아올 수 없으리라 여길 만치 맵짠 날들이었는데, 천마산 꼭대기에 쌓인 눈 더미 속에서, 응달진 곳마다 수북하게 쌓여진 누런색의 눈 더미 속에서도 시간은 정확한 속도로 흘러줌으로, 다시금 봄을 맞이할 수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커다란 축복인지.

문을 밀치고 밖으로 나간다는 사실로 이미 몸과 마음은 움츠러들고 겨울바람보다 빠른 속도로 가파른 내 발걸음이 입춘이라는 말 한마디로 이렇게 느긋해지다니... 간사한 인간의 모습이 아닌가 말이다.

처음 남양주시로 이사 오던 때가 언제였던가.

날마다 천정부지로 치솟는 전셋값은 남편 혼자만의 월급으로 시부모님들의 생활비까지 감당하고 두 아이를 키워야 하는 부담감이 지긋하게 우리 부부를 압박하던 이유와 두 아이가 아들이란 이유로 전셋집을 구하는 시간이 늦어지고 조건 또한 까다롭기 이를 데 없음을 깨달았을 때, 서울의 전셋값으로 16평의 아파트를 구입하던 때, 그때 큰 아이는 다섯 살이었고, 지금 고3인 작은 아인 첫돌을 맞이할 때였으니..

처음 남편과 평내동으로 이사올 때, 물론 우리의 꿈은 빨리 돈벌어 서울로 입성(?)하자는 대단한 결의였음은 말해 무엇할까.

‘처음’이란 단어는 얼마나 싱그러운 꿈이며, 생생한 현실이며, 영원히 깨어나고 싶지 않은 환상같은 기쁨인지.

처음 집을 가진 우리 부부는 이곳에서의 생활이 조금도 불편하지 않았다.  불편하기는 커녕 날마다 겅중겅중 뛰어다니는 아이들의 모습을 바라보고 철따라 변해가는 천마산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서울이란 곳이 우리가 굳게 결의한 ‘그곳’이 아니란 걸 알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치 않았음은 말할 것도 없다.  

아이들이 유치원엘 가고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거쳐 고등학교, 대학교를 가고, 큰 녀석이 입대를 앞두고 작은 녀석이 고3이 된 지금까지 우리는 이곳에서의 생활을 불편하다고 불평해 본 적이 없으니 얼마나 커다란 감사인지.

이곳에 살면서 우리는 참으로 많은 것을 배우고 많은 것을 얻었다.

어른보다 영특한 요즘 아이들의 되바라진 모습이 아닌 순수하고 바르게 자라준 두 아들, 12년동안 한결같이 출근할 수 있는 직장을 얻은 나, 서울까지의 직장생활을 마치고 이젠 작은 사무실을 얻어서 좋은 사람들을 만나며 사업을 시작한 남편.

무엇보다 따뜻한 마음을 가진 채로 힘든 일이 있으면 언제든 달려오는 속 깊은 이웃들, 기쁜 일이 있으면 내 일인 듯이 기뻐하며 활짝 웃어주는 이웃들,

아무리 생각해도 잃은 것은 없고 얻은 것만 있으니 이 또한 얼마나 큰 축복인가.

우리부부에게는  빼놓을 수 없는  특별한 여유가 있다.

토요일 오후가 되면 북한강을 조용히 흘러내리는 모습을 구경하며 서로를 반성하는 시간을 갖는다. 강촌이나 춘천댐으로 짧은 여행을 하면서 봄이면 봄꽃들을 구경하고, 여름이면 북한강에 톡톡 떨어지는 강물을 바라보며, 가을이면 곱게 물들어가는 빛고운 단풍들을 바라보고, 겨울이면 의암호와 춘천댐을 뒤덮는 얼음을 바라보며  잘못된 나를 돌아보고 반성하는 시간을 갖는다.

 또한 주일새벽이면 우리는 북한강을 찾는다.

희뿌연 안개가 걷혀 호명산을 휘감아 올려지는 모습을 바라보며 커피 한잔을 마시며 내일을 이야기한다. 직장생활에 지친 몸과 마음이지만 이 시간은 달콤한 잠에의 유혹도 뿌리치고 우리는 북한강의 새벽을 바라보며 한 잔의 커피를 나누는 것을 망설이지 않는다.

볼  때마다 새롭고 볼 때마다 아름다운 북한강의 매력은 오로지 여기에 살고 있음으로 누리는 행복이다.  주일아침 1시간을 우리가 늦잠 대신 이렇게 소중한 시간을 가질 수 있음 또한 북한강을 덤으로 누리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우리는 이 작고 충만한 행복을 놓치지 않으려 늘 노력한다.

변함없이 흘러가는 강물을 바라보며 지친 마음을 다잡기도 하고, 퍼덕이는 물고기들의 노님을 보며 힘차게 살아야 하는 이유를 발견하기도 하고, 여유롭게 헤엄치는 오리들을 보며 게으르지 않고 성실하게 살아야 하는 삶의 모습도 배우곤 한다.

나는 감히 말하고 싶다.

이곳에 사는 것이 정말 행복하다고.

물질적인 행복이 우리의 목표가 아니고 하나님이 주신 자연을 즐길 줄 알고 다스릴 줄 알고, 사람을 사랑할 줄 아는 기쁨이 진실로 행복의 조건임을 깨달은 나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리라.